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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과학(Sensory Science)/미각

사람마다 맛 취향이 다른 이유― 감각과 기억, 그리고 유전이 만든 맛의 지도

by lotus-white-sa 2025. 5. 29.

1. 유전자와 감각 수용체의 차이가 맛의 차이를 만든다

맛의 취향 차이는 먼저 신체적 감각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사람마다 혀에 분포된 미각 수용체의 밀도나 민감도, 특정 맛 분자에 대한 유전적 반응 차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쓴맛에 대한 민감도다. 일부 사람들은 특정 쓴맛 분자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거의 감지하지 못한다. 이는 TAS2R38이라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유전자가 특정한 방식으로 변이 되어 있는 사람은 브로콜리, 자몽, 커피 같은 음식이 유독 쓰게 느껴져서 싫어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쓴맛 수용체가 덜 민감한 사람은 쓴맛 속의 감칠맛이나 풍미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또 단맛에 민감한 유전자 조합이 있는 사람은 설탕의 농도에 따라 훨씬 더 강하게 보상 감각을 느끼기 때문에, 달콤한 음식에 더 강한 선호를 보인다. 이처럼 맛 취향은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감각 수용체가 어떻게 자극을 받아들이고 뇌에 전달하는가에 따라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즉, 우리는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감각적으로 전혀 다른 세계를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마다 맛 취향이 다른 이유
― 감각과 기억, 그리고 유전이 만든 맛의 지도

2. 후각, 시각, 촉각 등 다감각 통합이 맛 경험을 좌우한다

맛은 혀로만 느끼는 감각이 아니다. 우리가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는 경험은 실제로 후각, 시각, 청각, 촉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후각은 전체 맛의 70% 이상을 구성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음식에서 나오는 향, 조리 중에 발생하는 냄새, 입안에 들어왔을 때 비강으로 전달되는 레트로내이잘 향(retronasal smell)이 함께 작용한다. 이 후각의 민감도 역시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특정 향신료에 깊이 반응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무디게 느끼거나 심지어 불쾌하게 여기기도 한다. 또한 음식의 색깔, 그릇의 모양, 조명의 색온도 등 시각적 요소도 맛 인식에 영향을 미치며, 같은 음식이라도 붉은 조명 아래에서는 더 따뜻하고 진한 맛으로, 푸른빛 아래에서는 더 차갑고 싱거운 맛으로 인식될 수 있다. 촉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씹는 감촉, 끈적임, 바삭함 등 식감은 미각과 결합되어 기분 좋은 맛 경험을 구성하며, 각 개인은 특정 식감에 대해 선호하거나 회피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결국 맛은 단일 감각이 아니라, 다중 감각의 융합된 지각 경험이며, 그 통합 방식은 사람마다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같은 음식이라도 누구에게는 감동이고, 누구에게는 불쾌한 자극이 되는 것이다.

3. 문화적 경험과 기억이 맛의 해석을 바꾼다

어릴 때부터 어떤 음식을 접했는지, 특정 상황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와 같은 문화적 학습과 기억의 차이는 맛에 대한 해석과 반응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발효 음식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된장찌개, 김치, 청국장이 익숙하고 맛있게 느껴지지만, 이런 음식을 처음 접하는 서양인에게는 강한 냄새와 짠맛이 부담스럽고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이는 문화적 익숙함과 음식의 감각적 해석 구조가 서로 맞물려 작동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음식을 누구와 함께, 어떤 감정 상태에서 먹었는지에 따라 그 맛에 대한 감정적 태그가 달라진다. 생일날 먹은 케이크의 맛, 이별 후 혼자 먹은 라면의 맛은 단순히 당도나 염도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과 연결된 미각 경험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맛에 대한 기억과 정서적 연결고리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음식이 ‘좋은 맛’으로 해석될지 여부는 단순한 미각적 반응이 아니라, 삶의 경험이 축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결국 맛은 입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기억, 감정으로 구성되는 인식의 구조물이기도 하다.

4. 취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감각적 학습의 결과다

많은 사람들은 ‘나는 단맛을 좋아해’, ‘나는 해산물을 못 먹어’라고 말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맛 취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된 감각적 습관일 수 있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접하고 익숙해진 맛은 뇌가 ‘안전하다’, ‘익숙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선호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노출 효과(exposure effect)라고 하는데, 이 원리는 음식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꼈던 매운 음식이나 생선, 강한 향신료가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감각 수용과 뇌의 해석이 점차 적응하고 긍정적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연구에서는 편식이 심했던 아이들도 일정 기간 동안 천천히 음식을 노출시하는 방식으로 교육하면 점차 다양한 맛에 익숙해지고, 미각의 수용 범위가 넓어진다고 밝혀졌다. 따라서 맛 취향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감각 학습의 결과이며, 새로운 경험과 반복된 노출, 긍정적 정서 반응이 쌓일수록 맛의 세계도 확장될 수 있다. 맛은 ‘느끼는 것’이면서 동시에 ‘배워가는 것’이며, 우리는 그 감각적 취향을 스스로 형성해나가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