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맛의 선호는 단순히 기호가 아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나는 단맛이 좋아”, “그 음식은 너무 짜서 못 먹겠어” 같은 말을 자주 한다. 이런 맛의 차이는 흔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여겨지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이 선호에는 분명한 생물학적, 환경적 요인이 작용한다. 맛은 단지 혀로 느끼는 감각이 아니라, 뇌에서 해석되는 감각-인지의 통합 결과이기 때문에 개인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매운맛에 민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쓴맛을 거의 느끼지 못하거나 즐기기도 한다. 그 차이는 미뢰의 수와 민감도, 특정 유전자, 성장 과정에서의 음식 경험, 문화적 배경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맛의 선호는 우연이 아니라, 유전적 요소와 환경적 경험이 결합되어 형성되는 생리적·심리적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2. 유전자는 미각 수용체의 민감도를 결정한다
맛을 감지하는 것은 혀에 있는 미뢰(taste buds) 내의 미각 수용체(taste receptor cells)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수용체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을 감지하며, 그 기능을 결정짓는 것이 바로 유전자다. 예를 들어, TAS2R38 유전자는 쓴맛을 감지하는 수용체의 민감도에 관여하는데, 이 유전자가 특정한 변이를 가지고 있으면 브로콜리, 케일, 커피 등 쓴맛 성분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이 유전자가 둔감한 경우에는 쓴맛을 잘 느끼지 못해 쓴 음식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 이런 유전적 차이는 개인의 미각 민감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에 따라 특정 맛에 대한 호감이나 회피 반응이 나타나게 된다. 또 단맛을 감지하는 TAS1R2, TAS1R3 유전자 역시 개인의 당류 선호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따라서 사람마다 ‘맛있다’고 느끼는 기준은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분명하다.
3. 환경은 맛의 선호를 훈련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유전이 전부는 아니다. 환경적 경험과 문화는 맛 선호를 형성하고 강화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어릴 때부터 어떤 음식을 자주 접했는가, 가족이 어떤 식문화를 가졌는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식재료는 무엇인가에 따라 익숙한 맛과 낯선 맛에 대한 반응은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매운맛에 대한 선호는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노출과 뇌의 학습을 통해 습득되는 감각이다. 반복된 경험을 통해 처음에는 불편했던 맛도 점점 친숙해지고, 심지어 좋아하게 되는 현상은 미각의 조건화(맛-보상 연결)와 관련이 있다. 또한 어떤 음식이 좋은 기억과 함께 학습되었을 경우, 그 음식은 감정적으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다. 반면 나쁜 경험이 함께한 음식은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러한 정서적·문화적 학습 과정은 유전적 기반 위에 ‘후천적 선호’를 형성하며, 이로 인해 사람마다 선호하는 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4. 선호의 차이는 뇌의 해석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맛은 단순히 감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뇌의 해석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맛있다’, ‘맛없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이 과정은 대뇌의 미각 피질(gustatory cortex)과 보상 시스템, 그리고 감정 중추인 변연계(limbic system)가 함께 작용한다. 뇌는 맛을 단독으로 해석하지 않고, 후각, 온도, 질감, 배경음악, 시각 정보까지 통합하여 총체적인 ‘맛 경험’을 만들어낸다. 이때 같은 맛이라도 개인의 뇌가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하고 평가했는지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감칠맛이 강한 음식은 어떤 사람에게는 중독적으로 맛있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지나치게 짜다고 판단한 사람은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즉, 맛의 선호는 뇌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연결시켜 왔는가’에 따라 결정되며, 이는 유전·경험·문화가 모두 얽혀 있는 고차원적 인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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