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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과학(Sensory Science)/청각

유아는 어떻게 소리를 배워가는가?― 듣는다는 것에서 말하는 것까지, 감각은 어떻게 자라나는가?

by lotus-white-sa 2025. 5. 21.

1. 소리 감지는 출생 직후부터 시작된다: 청각의 초기 활성화

유아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태내 시기인 약 25주부터 청각이 작동하기 시작하며, 이미 자궁 안에서 어머니의 심장 소리, 장운동, 외부의 강한 소리 등을 듣고 기억하는 능력을 갖춘다. 출생 직후 유아는 주위의 소리에 즉각 반응하며,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 특히 어머니의 음성이다. 이는 단순한 청각 반사가 아니라, 이미 뇌의 청각 피질과 감정 처리 영역이 소리를 의미 있는 자극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증거다. 신생아는 높낮이, 음량, 리듬, 강세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일정한 리듬의 말소리에 안정감을 느끼고, 높은음의 소리를 더 선호한다. 이 시기의 소리 자극은 단지 ‘듣는 훈련’이 아니라 뇌의 청각 경로를 구성하고 시냅스를 연결하는 과정의 일부다. 청각 자극이 많을수록 뇌의 청각 영역은 더 빠르게 발달하며, 특히 언어가 풍부한 환경에 놓인 아이는 의미 있는 소리와 배경 소리를 구분하는 능력이 빨리 자란다. 즉, 유아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소리로 인식하고, 그것을 통해 감각과 뇌의 구조를 구성하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유아는 어떻게 소리를 배워가는가?― 듣는다는 것에서 말하는 것까지, 감각은 어떻게 자라나는가?

2. 소리를 구분하고 기억하는 능력: 음소 인식의 형성

유아는 생후 수개월 동안 놀라운 속도로 소리를 구분하고 기억하는 능력을 발달시킨다. 초기에는 다양한 언어의 소리를 모두 구분할 수 있는 ‘음소 구분 능력의 보편성’을 갖고 있지만, 생후 6~12개월 사이에 자신이 노출된 언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 시기의 유아는 반복적으로 들리는 소리 패턴을 기억하고, 소리 간의 차이를 감지하는 능력을 키워나간다. 예를 들어 한국어 유아는 ‘ㅂ’과 ‘ㅍ’의 차이를 빠르게 구분하고, 영어 유아는 ‘r’과 ‘l’의 차이를 예민하게 인식한다. 이런 음소 인식은 단지 청각적 민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전두엽과 측두엽이 함께 작동하여 소리를 범주화하고 언어의 기본 단위로 분류하는 기능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시기 아이들은 특정 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리거나, 웃거나, 울음을 멈추는 등의 감정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소리가 단지 자극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가진 신호로 뇌에 저장되고 있다는 증거다. 청각 단기 기억과 작업 기억이 활성화되며, 유아는 소리를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지속적으로 비교·분석·분류하며 의미를 추론하는 사고의 기반을 마련해 나간다. 즉, 유아는 소리를 통해 세계를 분절하고, 점차 그 소리들을 언어라는 질서 속에 끼워 넣기 시작한다.

3. 소리는 상호작용 속에서 의미가 된다: 언어 습득의 시작

생후 1년이 되면 유아는 단순히 소리를 듣고 구분하는 단계를 넘어, 소리를 통해 의미를 찾고 반응을 만들어내는 단계로 들어선다. 이 시점부터는 ‘옹알이’라고 불리는 소리 연습이 활발하게 일어나며, 이는 단지 무작위적 소리가 아니라 청각 피드백을 기반으로 한 발성 실험이다. 아이는 자신이 낸 소리를 듣고, 다시 조절하며 소리의 모양을 바꾸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점 실제 언어에 가까운 소리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상호작용이다. 보호자가 그 소리에 반응해 주고, 말을 걸어주고, 미소 짓고, 대답해 줄수록 유아는 그 소리를 ‘상대와 나를 연결해 주는 행위’로 인식하게 된다. 이 상호작용이 반복되면 유아는 점차 ‘엄마’, ‘아빠’, ‘줘’ 등의 단어를 듣고 모방하게 되고, 그 단어가 가진 의미도 동시에 학습하게 된다. 즉, 소리는 이제 단지 감각적 자극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상징과 연결되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뇌의 브로카 영역(말하기)과 베르니케 영역(이해하기)이 동시에 활성화되면서, 유아의 청각 기억은 점차 언어적 구조물로 통합되고,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기감정과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의 토대를 만든다. 이처럼 유아는 소리를 통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사람, 맥락과 반응 사이의 연결 속에서 언어를 살아있는 감각 경험으로 체득한다.

4. 감각의 총합으로서의 소리 학습: 뇌는 어떻게 말을 만들어내는가

유아의 소리 학습은 단순한 청각 정보의 입력이 아니라, 시각, 촉각, 운동 감각과 함께 이루어지는 다 감각적 통합 경험이다. 아이는 누군가가 말할 때 입술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보고, 제스처나 표정을 해석하며, 목소리의 높낮이와 감정을 함께 감지한다. 이 모든 감각이 합쳐져 하나의 ‘소리 경험’으로 뇌에 저장되고, 점차 언어적 이해와 표현으로 확장된다. 뇌의 측두엽(청각), 전두엽(계획 및 발화), 두정엽(공간 지각과 운동 감각)은 함께 작동하며, 유아는 점차 자신의 목소리와 타인의 소리를 연결하고, 반복적으로 그 차이를 학습한다. 특히 거울 뉴런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누군가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흉내 내려는 신경 기반이 활성화되며, 유아는 점점 발음을 조정하고 문장을 구조화할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단순히 듣고 따라 하는 기계적인 학습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세계와 나를 연결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뇌의 본능적인 구조화 행위다. 그래서 소리 학습은 듣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것은 곧 세상을 이해하고, 타자와 소통하고,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는 감각의 종합적 성장 경험이 된다. 유아는 결국 소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통해 자기 자신과 세계를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다.